농사일기

7월 2주차 - 자연은 그리 쉽게 죽지 않는다

Gom Guard 2022. 7. 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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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죽나 싶더니 새순이 엄청 다시 나기 시작했다. 다들 죽어버리면 어쩌나 고민하던게 쓸데없었다는 듯이. 새순은 더 두껍고 건강한 녀석들로 나왔다. 초기에 나온 순들이 에너지를 잔뜩모아 다음세대에게 전해주고 가듯이. 다음세대는 전세대의 노력을 기반으로 새 결과물을 얻어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나온 것일까.

 

이전에 상추나 깻잎류를 키울때는 다들 너무 잘 자라서 이런 고민을 해본적이 없었다. 물이 문제인지, 온도가 문제인지, 땅의 영양이 부족한 것인지 등. 그냥 씨만 심고 물만 주면 잘 자라는게 농사지 라는 생각을 갖고 물만 열심히 줬었는데 참외 ,수박, 메론, 블루베리, 로즈마리 등 잎으로 끝나지 않고 열매를 맺는 녀석은 좀처럼 쉽지가 않다. 열매를 맺는 건 정말 죽을만큼 어려운 일인가보다.

 

처음에 모종들을 심을 때 다들 크게 달라보이지 않았다. 그럭저럭 건강해보이고 모난곳 없고 심을 때도 비슷한 깊이에 동일한 방법으로 심어준다. 그런데 하루만 지나도 차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햇빛을 좀 더 많이 받거나, 주변에 잡초가 조금이라도 더 있거나, 물을 좀 더 받거나 덜 받거나. 모종도 달랐겠지만 환경도 동일할 수가 없다. 

 

한 1~2 주 지나면 유독 눈에 띄게 빠르게 자라는 녀석들이 있다. 같은 종류임에도. 그 조그만 구역에서도 토질이 더 좋았을 수도 있고 더 물을 잘 받았는지, 아니면 그냥 강한 녀석인지. 어떤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빠르게 성장하고 빠르게 열매를 맺는 녀석이 있다. 처음에는 그 녀석을 보면서 신기하고 얘처럼 잘 자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하고 괜히 기분이 좋더라. 그리고 그 와중에는 물도 못먹고 성장도 못하며 죽어가는 녀석도 있었다. 더 잘 관리해주고 신경을 많이 써도 결국에는 살아있는 상태만 유지하더라. 그것조차 안하면 말라서 죽어버리기도 하고.

 

모두 심고나서 이제 2달 정도 지난 무렵 수박들을 보면 맨처음에 맺었던 애만 크게 수박을 하나 맺고 나머지는 이제 수박을 맺기 시작했다. 더 크고 굵은 줄기로 더 높게 성장하고나서 이제 열매를 맺는다. 처음에 빠르게 맺었던 녀석의 줄기들은 영양을 받지 못하는지 크게 자라지 못하고 수박만 조금 더 성장한 채로 그대로 있다. 차후에 어떻게 될지를 모르겠지만 지금 맺은 수박들이 건강하게 클 것 처럼 보이는건 사실이다. 잎도 더 윤기있고 풍성해보이고, 건강해보인다.

 

식물들이 자라는 걸 보면서 사람의 삶을 자주 대입해서 보려고 하는 습관이 있다. 결국엔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나는 초반에 뛰어났던 수박처럼 정말 빠르게 자라고 싶었다. 시선을 독점하고 싶기도 했고 인정받고 싶기도 했는데, 뭐가 그리 잘 안되는게 많더라. 시험을 잘 봐도 결실을 맺지 못하고, 되는 것이 당연했던 때는 안되기도 하고, 노력을 해서 얻은 경험을 결과로 본다면 꽤나 많은 것을 얻고 배운것 같기도 하지만 원하는 곳 까지 도달하기는 그렇게 어렵더라. 당연히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더 하면 될거야 라고 생각하고 해나갔지만 하다하다 지쳤을 무렵 아무 생각 없던 일들은 잘 풀리고 기회가 만들어 지는 것들을 보면서 세상이 뭔가 이루어지는 방식이 내가 생각했던 것들과는 매우 다를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게 극단으로 가면 노력을 안하면서 기복신앙만 추구하는 경우도 되겠지만, 그 정도 까지 내가 갈 것 같진 않고 좀 마음을 놓고 접근하게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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